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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투탕카멘의 저주와 진실

드립학개론 2024. 1. 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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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에게 투탕카멘의 저주와 진실에 대해 알려달라고 질문하였습니다.

 

"투탕카멘의 저주"는 플라시보 여왕의 무덤을 발견한 고대 이집트의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제18 왕조의 제10대 황제로, 그의 무덤은 1922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 무덤은 발견 당시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그 안에는 플라시보 여왕의 묘지와 함께 수많은 보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발견은 곧 불길한 이야기와 사건들로 둘러싸이게 되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투탕카멘의 무덤과 그 안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후에 이상한 사고를 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런 소문들은 "투탕카멘의 저주"로 불리며, 이를 믿는 사람들은 그 보물이나 무덤에 접근하는 것이 불운을 불러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은 전설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보물 중 일부는 세계 각지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이를 보관하거나 연구하는 과정에서 저주와 관련된 어떠한 증거나 사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투탕카멘의 저주는 현대에는 전설로 남아 있지만, 이에 대한 믿음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ChatGPT의 정보로는 투타카멘의 저주는 그저 루머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루머들이 있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투탕카멘은 누구인가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제18 왕조의 제10대 황제라고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12대 황제라고 하네요. ChatGPT 선생님을 믿어 보겠습니다. 투탕카멘의 본명은 투트앙 크아멘(Tutankhamun)으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며, 어린 시절 동안 그의 스승이자 고위 관리인이었던 아이(Ankhesenpaaten)과의 결혼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8세의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투탕카멘 무덤 발견 당시 미라의 x선을 촬영한 결과, 머리에 둔기를 맞은 듯한 두개골 골절이 발견되어 투탕카멘이 암살을 당했다는 설이 주장되었습니다. 투탕카멘의 죽음 이후로 의문 투성이의 왕위 계승이 일어나기도 했기 때문에 암살설은 그 당시 신빙성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러나 머리의 부상 흔적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두개골 골절이 피라미드에서 떨어진 추락사나 사무실에서 부딪혔거나 등의 주장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투탕카멘은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다리의 심각한 골절이 상처로 덧나 죽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당시 시대를 생각하면 항생제나 의학의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처가 곪고 덧나서 죽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가설로는 투탕카멘의 부친이 유전적 기형 의혹을 받고 있어서 유전병으로 병사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투탕카멘의 사망원인은 특정할 수 없습니다.


투탕카멘의 무덤

영국 출신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는 1922년 11월 26일에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고학적 발굴을 하게된다. 발굴 당시에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110kg의 황금 관, 황금 마스크, 금은보화 등의 유물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때 투탕카멘의 무덤 입구에는 '잠자는 왕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죽음의 날개가 스치리라'라는 경고 문구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파라오의 저주'로 알려져 있다.


파라오의 저주 팩트 체크

- '잠자는 왕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죽음의 날개가 스치리라'는 저주의 문구가 무덤의 봉인에 히에로글리프로 쓰여 있었다. 

 진실->날조입니다. 저런 문구는 투탕카멘의 무덤 그 어떤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저주하는 문구 자체가 발 견된 적이 없습니다.

 

-저주의 첫 희생자는 발굴팀의 후원자 카나본 경이었다. 발굴 당시 카나본 경은 모기에 물렸는데, 물린 곳이 심하게 부풀어 오른 데다가 면도를 하다가 환부를 베는 바람에 덧나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카나본 경이 사망한 새벽 2시, 카이로 전역에서 갑자기 5분간 정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진실->카나본 경은 발굴 당시에 이미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카나본 경이 사망한 새벽2시 설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영국과 이집트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 카이로에서 발생한 정전은 그 당시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으므로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심지어 카이로는 오늘날까지도 정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발굴에 참여했던 아서 웨이갈이 훗날 회상하기를, 카나본 경이 무덤에 들어갈 때 웃고 떠들며 농담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카나본 경은 옆에 있던 기자에게 '내 그에게 6주 간 살 시간을 주겠네'라고 말했다. 카나본 경은 6주 후에 죽었다.

진실-> 아서 웨이갈의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점은 파라오의 저주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진 시점이었다. 저주에 대한 소문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웨이갈이 언론의 입맛에 맞는 인터뷰를 해줬을 가능이 크다.

 

-1929년까지 발굴에 관여한 사람 중 11명이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하였고, 무덤을 공개할 당시 참석했던 20명의 고고학자 및 관리, 기자들 가운데 13명이 그로부터 5년 내에 사망했다. 또 1935년에 투탕카멘과 관련된 희생자가 21명으로 늘었으며, 이후 발굴에 관여한 사람들 중 사망자가 총 60여 명에 이르렀다.

진실->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은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카나본 경 말고도 발굴에 참가한 인원 일부가 연쇄적으로 사망한 것은 사실이다. 이 사람들의 사망 원인에 대한 다양한 추축이 있지만, 그저 기묘한 우연의 일치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카나본 경과 사망한 인원을 합치면 21명이지만 실제로 발굴에 참여한 총인원이 1500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발굴을 지휘했던 하워드 카터는 발굴 이후 17년 동안 건강하게 살다가 64살에 생을 마감했다.

하워드 카터는 남은 평생 동안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에 코웃음치고 살았고 단순한 미신이라고 딱 잘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루머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루머로 종결됐습니다.

또한 무덤에 함정이 설치되어있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 또한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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