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스테리

세계 7대불가사의 - 만리장성(상)

드립학개론 2024. 1. 30. 19:37
반응형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만리장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간단한게 ChatGPT에게 만리장성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역사적인 건출물로서, 중국 북부의 복잡한 지형을 따라 건설된 국경방어용 장벽입니다. 이는 중국 고대 왕조인 초나라(BC221~AD206)때부터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많은 왕조와 왕국들이 건설한 가장 유명한 건축물중 하나입니다.

 

만리장성은 주로 목적지에서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시멘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가지의 천연 재료와 인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주요 목적은 오랑캐의 침입을 막고 중국의 영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만리장석은 기와, 돌, 나무, 벽돌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진흙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매우 긴 거리에 걸쳐 있기 때문에 여러 지점에 거점을 형성했습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지며, 현재는 중국의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ChatGPT에게 물어본 결과 알아보기 쉽게 요약해주었습니다. 이제 언제 왜 등의 호기심을 가지고 만리장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만리장성은 1987년 문화유산에 등재된 시설물중 하나이다.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이 아닌 장성으로 부르며 영어로는 The Great Wall 입니다. 

만리장성이 건설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로 자국 영토와 인구 보호를 위함이다. 전국시대부터 중국은 충분히 개간이 되었기때문에 자국의 영토를 개발하고 개척하는 것보다는 이미 발전한 상대국가의 영토와 인구를 빼았는 형태의 전쟁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이런 변화때문에 효과적인 영토와 인구 보호가 절실해졌는데, 전국시대에 각 국가들이 이런 이유로 장성을 쌓게된것이다. 즉 적의 침입과 기동로를 제한하고 자국민과 영토 보호를 위함이다.

 둘째는 북방 유목민족과의 경계선 확립이다. 유목민족이 계속해서 남하하게되면서 국경 통제가 어려워지다보니 유목민족의 남하를 막기위해 북방에 위치한 국가들이 장성을 쌓게되었다.

 

나무위키 펌

장성을 처음 짓기 시작한 나라는 초나라때부터이며 초나라의 첫 화제인 연은 중국을 통일하고 국경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분단된 성벽들을 연결하여 약 300km가 넘는 장성을 건설했습니다. 이것이 장성의 효시이다.

 

이후에는 장성을 건설하는 것이 전국시대 강대국들의 유행이되었다. 전국시대 초기 위나라가 서쪽의 강국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장성을 쌓았으며 이 장성의 길이는 대략 60km이다.

 

제나라는 남쪽에 장성을 건설했는데 이때 강국이었던 오와 월, 그리고 초나라를 견제하려는 목적이었다.

 

한나라 또한 위나라와의 접경지대에 짧은 장성을 건설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장성을 활용하던 조나라는 영토 자체가 유목과 농경의 경계지가 대부분이었기에 유목민의 남하를 막을 자연지형이 없어서 장성을 건설하였다.

 

북방민족과 접해있던 연나라 또한 기동성이 우수한 유목민족을 견제하기 위해 북쪽 국경에 장성을 건설하였다.

 

장성을 쌓은 것으로 유명한 진나라 또한 전국시대부터 적극적으로 장성을 활용했다. 진나라는 오랑캐인 융족, 흉노 등의 유목민족을 막기 위해 장성을 쌓았다.

 

 

이후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통일하면서 장성들을 연결해 지은 것으로 만리장성의 시초이다. 하지만 장성은 진나라가 멸망하면서 한동안은 역사 유적으로만 존재하였따.

 

이후 한나라의 한무제가 한 번 더 장성에 대한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면서 위치가 이전되었으며, 그 길이 또한 진나라때보다 더 길어졌다. 그리고 후한 말 이후 사회 혼란과 분열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서서히 무너졌다.

 

명나라 시대가 오면서 장성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재정비됐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대의 장성이다. 진대와 명대 장성은 위치도 상당히 다르기때문에 사실상 다른 장성이다.

 

진시황이 연결해서 지은 장성은 지금의 벽돌이 아닌 흙을 이용해 지은 토성의 형태이며 높이도 높지 않고 감시 영역이 워낙 넓다보니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넘어 갈 정도였다고 한다.

 

명나라에 이르러서 11대 세종 가정제 때 몽골족의 알탄 칸에게 베이징이 포위되는 사건이 일어 난 후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위해 12대 목종때가 되어서 현재와 같은 벽돌을 이용한 장성의 형태가 갖추어졌다. 하지만 명나라의 영역이 한나라 시절때의 영역보다 남쪽으로 축소되었으므로 사실상 장성을 신축해야하고 공법이 바뀌었기때문에 장성 건설은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지속되었다.

 


이번 편은 만리장성의 초기부터 명나라 시대때까지 이어온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