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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펌

 넷플릭스의 흥행작 <나르코스>의 주인공(?)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출신의 마약왕 중의 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마약왕으로 군림하며 포브스에서 추정한 금액으로 세계에서 7번째 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유년기

 1949년 12월 1일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어머니는 교사였다. 어린 시절 에스코바르의 집안은 가난하여 기초수급을 신청할 정도였다. 초등학생 에스코비르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학교에 다녀야 했고, 학교에서 놀림감이 되었다. 학창 시절 에스코바는 성적이 우수했지만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17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2년 뒤 복학했지만 다시 자퇴해버리고 말았다. 정치인이 꿈이던 그는 졸업장을 위조해서 대학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학비 문제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마약왕이 되기까지

 에스코바르가 마약왕이되기까지 성공한 요인중 하나는 바로 돈 아니면 총알이라는 모토였다. 정치인, 공무원, 경찰과 판검사들에게 돈을 주고는 자신에게 협조하여 부자가 되던지 적대시해서 죽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 것이다. 자신에게 협조한 이들에게는 거액의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군사력을 이용해 안전도 보장해 줬지만, 비협조적인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오죽하면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대통령 후보가 타려던 여객기를 폭파하기까지 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에게 돈을 주어 고등법원을 공격하게 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에스코바르는 마약밀매를 하고, 경쟁 카르텔을 제거하고, 경찰들에게 뇌물을 주는 행각을 보이면서도 나름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메데인의 상황에 관심을 가졌다. 마약 수입을 통해 농장을 인수하고 건설업과 자동차 판매대행까지 하면서 단순 카르텔에서 메데인 그룹으로 키워나갔다. 에스코바르는 이런 자신을 성공한 사업가로 포장했고, 처음에는 콜롬비아 양대정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하며, 콜롬비아의 여러 게릴라 및 우익 민병대와도 이합집산을 거듭했지만 자신이 스스로 정치인이 되어 더 안정적인 사업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마약을 판 더러운 돈 중 일부를 메데인복지와 인프라 구축하는데 투자하였다. 또한 빈민충에게도 상당한 돈을 나눠주고 집, 학교 그리고 병원까지 건설했다. 노숙자들과 거지들에게도 무료 급식소를 열어주었고 성당 및 가옥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축구팀 창설까지 하였다. 이로 인해 메데인 주민들의 삶은 점차 나아졌고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충하였다. 오죽하면 별명이 로빈 후드라고 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이를 토대로 콜롬비아 자유당에 입당하고 1982년 콜롬비아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차기 대통령까지 노렸다고 한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에스코바르의 자체적인 사업가 혹은 정치인으로의 재능은 충분하였다. 마약상이었던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범죄자 낙인

 에스코바르가 정치인으로 인기를 얻을 때 즈음 법무부 장관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가 그의 범죄 사실을 및 비리행위를 폭로하고 마약으로 골치아프던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합동 작전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에스코바르는 졸지에 범죄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폭로한 범부무 장관 보니야를 대로에서 암살하는가 하면 콜롬비아 군대, 경찰, 사법부, 게릴라, 정치인 등을 매수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불태워 죽이는 등의 테러도 저지르는 잔혹한 짓을 저질렀고,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에 자신의 사병을 잠입시켜서 전투까지 벌이며 콜롬비아 정부에 칼을 겨누기까지 했다. 당시 메데인 카르텔보다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없었기에 정치인 생명이 끝났어도 그의 영향력은 크게 지장이 없었다.

 추적당하는 신세가 된 에스코바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의 부채를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미국의 눈치를 보던 콜롬비아 정부가 그의 사면을 거부했다. 그리고 협상을 거쳐 자수를 한 후 자신이 지은 교도소에 스스로 수감됐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가 교도소에 수감된 게 아니란 건 다 알 것이다. 웬만한 특급 호텔보다 더 좋은 시설에 면적은 약 40만 평 정도에 교도관은 에스코바르가 직접 선발했다. 교도소 안에는 수영장, 당구장, 볼링장, 나이트클럽, 정원, 바 등이 있었다. 게다가 외출을 원하면 언제든지 외출하고 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콜롬비아 정부에 에스코바의 신변 인도 요청을 한 사실을 알게 된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호화 교도소에서 탈옥한다.

 에스코바르가 탈옥한 이후부터는 자기를 체포하고, 방해하려는 관료, 기자들까지 마구 죽여대다 보니 콜롬비아 정부는 에스코바르의 범죄를 파헤칠 수가 없었다. 특히 그는 마약을 팔아서 번 돈으로 사회 고위층들을 매수하거나 협박해서  자신을 체포하는데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폭탄이나 총을 쏘는 등의 테러 행위를 벌이다보니 그의 체포과정은 진전이 없었다.

 계속해서 진전이 없는 와중 미국 정부가 콜롬비아 정부에 직접적으로 강한 압력을 가한다. 미국은 에스코바르가 미국에 코카인을 수출함으로써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미국 내 마약 중독자 수를 늘리는데 기여한 국가적 차원의 범죄자가 체포되지 않고 마약 밀매를 하며 지내는 행태를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콜롬비아 정부에 에스코바르를 미국으로 보내라고 압력을 가한다. 또한 당시 에스코바르에게 당한 사람이 수천 명씩이나 있었기 때문에 콜롬비아 자체 여론도 좋지 않았다. 이 시기에 에스코바르 측의 부하 조직원 두 명이 에스코바르와 시비가 붙어서 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빌미로 콜롬비아 정부에서는 에스코바르를 수배자로 전락시키고 체포하는데 더욱더 매진하게 된다. 하지만 에스코바르는 메데인에서 왕과 같은 대접을 받기에 메데인 내에서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계속해서 도피 생활을 했다. 그러던 와중 자신의 가족이 독일 입국이 거부되면서 콜롬비아 대통령궁 근처에 220파운드의 c4폭탄을 터트린다. 이때 다친 사람은 대부분 어린이들이었고, 이 사건으로 콜롬비아인들에게 에스코바르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안 좋아져 모두가 에스코바르를 죽여버리고 싶어 할 정도였다. 그래서 콜롬비아 정부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수사기관과 군대를 동원하고 미국 수사기관과 협조해 에스코바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에스코바르는 추적을 피해 은신처에 숨어 지내다가 보고타에 있던 자신의 아들과 20여 초간 통화를 하다가 위치가 발각되어 DEA(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미국의 마약단속국)와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투입되어 1993년 12월 2일, 탈출하던 중 포위되자 소총으로 DEA요원과 콜롬비아 특수부대와 교전하다가 총에 맞고 사망했다. 당시 에스코바르의 경호원 엘 리몬도 사살되었다.

 


에스코바르가 가한 테러행위들

 에스코바르는 잔혹한 성격으로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죽인 아주 나쁜 사람이다. 초기에는 자기 마음에 들지않는 깡패나 방해꾼 그리고 경쟁 카르텔 조직원들을 죽이는 정도였지만,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후부터는 완전한 악당이 되어 정부나 언론사에게 까지 테러를 가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이 외에도 군인,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판사, 검사, 정치인 등도 희생되었다. 또한 에스코바르는 카르텔을 소탕하려던 대통령 후보 3명도 암살했다. 암살시도한 대통령후보는 4명인데 3명만 암살에 성공했다. 살아남은 나머지 대통령 후보는 운이 좋았는데 에스코바르가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했지만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은 면했다. 하지만 그 비행기에 탔던 110명은 사망하였다. 비행기를 타지 않은 대통령 후보는 추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결국 에스코바르를 찾아내 사살한다.

 대통령 후보 테러 시도 9일 후에는 보고타에 있는 콜롬비아 행정보안국 건물 앞 트럭을 폭파시켜 52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같은 해 5월 30일에도 행정보안국 관리직 요원인 미겔 마사 마르케스를 암살시도했지만 실패하였지만 4명 사망, 3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가 1989년으로 200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3건의 테로로 166명이 사망하였다.

 에스코바르의 테러로 사망한 사람은 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학살은 물론이고 카르텔을 지휘해 콜롬비아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수도로 진격한 이력도 있으니 마약왕을 넘어선 군벌에 가까운 일물로 악명을 떨쳤다. 에스코바르의 형도 동생 덕분에 한몫하면서 살았지만 감옥에 폭탄이 와서 다치는 등 정상적인 삶은 아니었다. 에스코바르의 장남 세바스티안 마로퀸은 꽤 정상적으로 자랐지만 자신의 아버지 에스코바르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여, 언론사와 인터뷰하던 도중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는 "나는 그 X새끼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 내가 직접 죽이겠다"며 복수를 다짐하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으로 아르헨티나로 망명을 갔고 이름 또한 개명하였다. 이후 아버지의 범죄와 비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서는 피해자들을 만나 아버지의 범죄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있으며 건축가로 일하며 조용히 살고 있는 중이다. 또한 드라마 <나르코스>에 대해 왜곡되었다면서 비판하였는데 그 이유가 자기 아버지의 범죄를 미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데인의 천사(?) 에스코바르

어릴적 자신이 자란 메데인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에스코바르는 환경 개선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메데인의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시키는 공을 세우고 당시 막장이던 콜롬비아의 상황 속에서 많은 빈민층들을 위해 자기 재산을 풀어서 집을 짓고 병원을 짓는 등의 행보도 보였다. 또한 꿈도 희망도 없던 실업자들을 손수 고용해 당시 콜롬비아의 경제난을 완화시켰다는 점, 좌파와 우파를 가라지 않고 사람을 끌어모았다는 점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은 좋았다. 그래서 메데인에서의 도피생활이 1년 넘게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도 에스코바르를 좋게 보는 빈민층들이 남아있다고 하며 메데인에서의 평가 또한 좋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메데인에서의 공로가 그의 범죄를 세탁하거나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마약 유통을 하면서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며 타 지역 주민들에게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테러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코바르는 메데인에서만 천사일 뿐이다. 천사라는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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